백두대간사람들7 설악산 길골- 21세기가 두려운 전나무 천국
작성일 18-08-28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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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안강 조회 238,805회 댓글 0건본문
조심하세요. 어린 나무들은 상처를 입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해요. 보세요. 저렇게 줄기가 두 개인 것이나, 저것처럼 심하게 뒤틀린 나무들은 어릴 때 상처를 입은 것들이에요.” 산이 좋아서 산림청 공무원이 됐다는 박광서(31·인제국유림관리소)씨의 발걸음이 가볍다. “저 나무는 가지가 빨갛죠. 층층나무예요. 요렇게 가지에 무늬가 들어 있는 것은 물푸레나무고요. 저거는 비슷하지만 단풍나무예요. 요거는 고로쇠나무처럼 수액을 뽑을 수 있는 거제수고요. 거제도에 가면 군락지가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고요 버섯은 떡다리에요. 저것은 목이버섯이고요. 이렇게 버섯을 달고 있는 나무는 이미 죽은 나무예요. 포자가 나무 속에 잔뜩 퍼진 다음에 버섯이 나오거든요. 저기 주목이 있네요. 능선의 것은 죄다 도벌당하고 요즈음은 계곡에서 겨우 찾아볼 수 있어요.”
설악산 길골. 백두대간의 설악산 북쪽 들머리인 황철봉과 마등령 사이에서 골을 파기 시작해 백담사 계곡에 이르러 끝을 맺는 그 긴 계곡은 나무들의 천국이다. 과거 화전민들이 살았고, 그보다 더 옛날에는 지금의 설악동과 인제군을 잇는 고개였다고도 하는데 계곡 어디에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길골은 아직까지는 나무와 풀, 곤충과 새, 그리고 동물들의 세상이었다.
지난 97년 1년 동안 치러진 산림생태계 생물다양성조사에 참석했던 임종환(37) 연구사는 길골을 “우리나라 천연림 가운데 흔치 않은 좋은 지역”으로 기억하고 있다. 설악산 여느 계곡보다 사람 손을 덜 탄 데다 수종이 다양한 탓이다. “수종이 다양하다는 것은 단지 종류가 많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숲이 얼마나 건강하냐는 것이지요.”
길골에서 만날 수 있는 거대한 전나무들이 수형목(秀形木)이라는 팻말을 걸게 된 것도 숲이 건장하기 때문이다. “전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건강한 것도 드문 일입니다. 수형목은 유전자가 건강하고 생김새가 완벽에 가까운 나무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일단 지정되면 지속적인 관찰과 종자채취, 시험연구 등이 이뤄지지요. 결국 수종을 더 좋게 개량한 뒤 양모로 보급해 전국 수목들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씨앗나무인 셈이죠.”
길골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손길이 오랫동안 미치지 않은 탓이다. 계곡에는 이름 난 바위도 빼어난 폭포도 없는 데다 주변 경관도 설악산답지 않게 수수해 등산객들은 길골을 찾지 않았다. 게다가 91년 이후 지금까지 자연휴식년제실시구간으로 묶여 출임금지 팻말이 들머리를 지켜주고 있다. 길골의 거대한 전나무들은 70∼80년생이 대부분이다. 일제시대 대규모 벌목이 이뤄진 다음에 새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내린 것들인 셈이다. 숲은 그렇게 인위적인 간섭이 없으면 빠른 속도로 제 모습을 찾아가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산림에 대한 연구는 일천합니다. 아직 100년도 채 안 됐죠. 그런 탓에 오해들도 많이 있지요.” 대표적인 것이 소나무에 관한 것이다. “소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랍니다. 바람에도 강한 편이고요. 그늘을 싫어해 자기보다 키가 큰 나무들이 많으면 자라지 못해요.” 길골에서 소나무가 소수종에 속하는 이유다. 1975년 독가촌 정리 때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철수했다는 백담사 계곡쪽 들머리나 능선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줄기가 구부러진 소나무가 토종이라는 생각도 잘못입니다. 원래 소나무는 직립성이 강한 나무입니다. 다만 거친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다 보니 생장점이 쉽게 망가지고 그래서 가지나 줄기가 구부러지는 것이지요.” 박광서씨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고 하듯 곧게 자란 소나무 위치를 알려준다. 계곡 아래쪽에서 서너그루의 소나무가 어림잡아도 30여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키를 자랑하고 있었다.
“숲은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저 아름드리 나무를 넘어뜨린 것은 벌레들입니다. 벌레들이 수액이 뿜는 달콤한 맛을 찾아 나무 속을 파고들어요. 그 벌레들을 잡아먹기 위해 새들이 나무를 쪼고요. 결국 나무는 말라죽거나 제 무게를 못 이겨 부러지게 되지요. 넘어진 나무는 썩어가면서 다른 나무를 키우는 양분이 되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는 또다른 나무들이 자라지요. 나무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자리를 찾아가요.”
이런 과정을 거쳐 길골의 바람 드센 능선에 가까운 곳에는 신갈나무와 소나무가 우점종으로 자리를 잡았고, 전나무는 비교적 습기가 많고 일조량은 부족한 계곡 중간부분에 맹주로 군림하고 있다. 전나무의 그늘 밑에서는 음지에 강한 서어나무, 박달나무, 단풍나무 등 활엽수들이 권토중래를 꿈꾼다. 사람들의 손을 비교적 많이 타는 계곡 하단부에서는 아직도 우점종이 결정되지 못한 채 나무들간의 치열한 전쟁이 진행중이다.
그러나 길골에서 언제까지 이런 아름다운 전쟁을 볼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백두대간 종주 붐이 일면서 길골을 찾는 등산객들의 발길도 늘었어요. 특히 구간종주를 하는 분들은 길골을 하산 코스로 잡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국립공원 설악산사무소 최승운 계장은 이런 일이 일반 등산객보다 전문 산악인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심지어는 입산금지 팻말을 뽑아버리고 차단 철망에 구멍을 뚫어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IMF 바람이 길골에까지 불어올 것도 큰 걱정이다. “나물채취가 말도 못하게 심해요. 나물이 사라지면 그 경쟁종이 아주 쉽게 우점종으로 자리잡아요. 나물류의 경쟁종이라는 것이 대부분 독성이 강한데다 외래종일 경우가 많거든요.” 풀이 죽으면 나무가 죽고 결국 숲이 죽을 것이라는 우려가 큰 것은 ‘숲은 너무 넓고 그것을 지키는 이들은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시령 도적폭포 인근에서 엄나무가 도벌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그 구역을 담당하던 직원이 징계를 받고 오대산관리사무소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 직원은 고민하다가 출근길에 교통사고까지 당했다. 평소 내성적이던 그는 결국 뇌출혈을 일으켜 반신불수의 몸이 됐다고 한다. 그 직원은 국립공원 설악산관리소 백담분소에서 매표와 시설보수 등의 업무를 함께 맡고 있었다 한다. 백담분소가 담당해야 할 구역은 123ha에 이르고 직원은 6명에 지나지 않는다. 길골의 자연휴식년제는 1999년이 시한이다.
** 길골은 여전히 입산통제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출처: http://100mt.tistory.com/entry/백두대간사람들7-설악산-길골-21세기가-두려운-전나무-천국 [<한겨레21> 신 백두대간 기행 블로그]
설악산 길골. 백두대간의 설악산 북쪽 들머리인 황철봉과 마등령 사이에서 골을 파기 시작해 백담사 계곡에 이르러 끝을 맺는 그 긴 계곡은 나무들의 천국이다. 과거 화전민들이 살았고, 그보다 더 옛날에는 지금의 설악동과 인제군을 잇는 고개였다고도 하는데 계곡 어디에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길골은 아직까지는 나무와 풀, 곤충과 새, 그리고 동물들의 세상이었다.
지난 97년 1년 동안 치러진 산림생태계 생물다양성조사에 참석했던 임종환(37) 연구사는 길골을 “우리나라 천연림 가운데 흔치 않은 좋은 지역”으로 기억하고 있다. 설악산 여느 계곡보다 사람 손을 덜 탄 데다 수종이 다양한 탓이다. “수종이 다양하다는 것은 단지 종류가 많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숲이 얼마나 건강하냐는 것이지요.”
길골에서 만날 수 있는 거대한 전나무들이 수형목(秀形木)이라는 팻말을 걸게 된 것도 숲이 건장하기 때문이다. “전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건강한 것도 드문 일입니다. 수형목은 유전자가 건강하고 생김새가 완벽에 가까운 나무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일단 지정되면 지속적인 관찰과 종자채취, 시험연구 등이 이뤄지지요. 결국 수종을 더 좋게 개량한 뒤 양모로 보급해 전국 수목들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씨앗나무인 셈이죠.”
길골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손길이 오랫동안 미치지 않은 탓이다. 계곡에는 이름 난 바위도 빼어난 폭포도 없는 데다 주변 경관도 설악산답지 않게 수수해 등산객들은 길골을 찾지 않았다. 게다가 91년 이후 지금까지 자연휴식년제실시구간으로 묶여 출임금지 팻말이 들머리를 지켜주고 있다. 길골의 거대한 전나무들은 70∼80년생이 대부분이다. 일제시대 대규모 벌목이 이뤄진 다음에 새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내린 것들인 셈이다. 숲은 그렇게 인위적인 간섭이 없으면 빠른 속도로 제 모습을 찾아가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산림에 대한 연구는 일천합니다. 아직 100년도 채 안 됐죠. 그런 탓에 오해들도 많이 있지요.” 대표적인 것이 소나무에 관한 것이다. “소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랍니다. 바람에도 강한 편이고요. 그늘을 싫어해 자기보다 키가 큰 나무들이 많으면 자라지 못해요.” 길골에서 소나무가 소수종에 속하는 이유다. 1975년 독가촌 정리 때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철수했다는 백담사 계곡쪽 들머리나 능선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줄기가 구부러진 소나무가 토종이라는 생각도 잘못입니다. 원래 소나무는 직립성이 강한 나무입니다. 다만 거친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다 보니 생장점이 쉽게 망가지고 그래서 가지나 줄기가 구부러지는 것이지요.” 박광서씨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고 하듯 곧게 자란 소나무 위치를 알려준다. 계곡 아래쪽에서 서너그루의 소나무가 어림잡아도 30여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키를 자랑하고 있었다.
“숲은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저 아름드리 나무를 넘어뜨린 것은 벌레들입니다. 벌레들이 수액이 뿜는 달콤한 맛을 찾아 나무 속을 파고들어요. 그 벌레들을 잡아먹기 위해 새들이 나무를 쪼고요. 결국 나무는 말라죽거나 제 무게를 못 이겨 부러지게 되지요. 넘어진 나무는 썩어가면서 다른 나무를 키우는 양분이 되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는 또다른 나무들이 자라지요. 나무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자리를 찾아가요.”
이런 과정을 거쳐 길골의 바람 드센 능선에 가까운 곳에는 신갈나무와 소나무가 우점종으로 자리를 잡았고, 전나무는 비교적 습기가 많고 일조량은 부족한 계곡 중간부분에 맹주로 군림하고 있다. 전나무의 그늘 밑에서는 음지에 강한 서어나무, 박달나무, 단풍나무 등 활엽수들이 권토중래를 꿈꾼다. 사람들의 손을 비교적 많이 타는 계곡 하단부에서는 아직도 우점종이 결정되지 못한 채 나무들간의 치열한 전쟁이 진행중이다.
그러나 길골에서 언제까지 이런 아름다운 전쟁을 볼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백두대간 종주 붐이 일면서 길골을 찾는 등산객들의 발길도 늘었어요. 특히 구간종주를 하는 분들은 길골을 하산 코스로 잡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국립공원 설악산사무소 최승운 계장은 이런 일이 일반 등산객보다 전문 산악인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심지어는 입산금지 팻말을 뽑아버리고 차단 철망에 구멍을 뚫어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IMF 바람이 길골에까지 불어올 것도 큰 걱정이다. “나물채취가 말도 못하게 심해요. 나물이 사라지면 그 경쟁종이 아주 쉽게 우점종으로 자리잡아요. 나물류의 경쟁종이라는 것이 대부분 독성이 강한데다 외래종일 경우가 많거든요.” 풀이 죽으면 나무가 죽고 결국 숲이 죽을 것이라는 우려가 큰 것은 ‘숲은 너무 넓고 그것을 지키는 이들은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시령 도적폭포 인근에서 엄나무가 도벌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그 구역을 담당하던 직원이 징계를 받고 오대산관리사무소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 직원은 고민하다가 출근길에 교통사고까지 당했다. 평소 내성적이던 그는 결국 뇌출혈을 일으켜 반신불수의 몸이 됐다고 한다. 그 직원은 국립공원 설악산관리소 백담분소에서 매표와 시설보수 등의 업무를 함께 맡고 있었다 한다. 백담분소가 담당해야 할 구역은 123ha에 이르고 직원은 6명에 지나지 않는다. 길골의 자연휴식년제는 1999년이 시한이다.
** 길골은 여전히 입산통제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출처: http://100mt.tistory.com/entry/백두대간사람들7-설악산-길골-21세기가-두려운-전나무-천국 [<한겨레21> 신 백두대간 기행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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